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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란 어떤 게임인가?

골프게임이란 한마디로 수백m 떨어져 있는 직경 10.8cm의 구멍(홀컵)에 클럽으로 볼(크기는 직경 4.3~4.5cm)을 쳐서 집어넣는 게임이다.
쉽게 말해 가장 적은 횟수로 볼을 쳐서 홀에 집어넣는 것이다.
골프에는 '파'(기준타수)가 있으며 파는 파3, 파4, 파5 등 세종류, 파3이란 세번을 쳐서 볼을 홀에 넣는 것이고 파4는 4번, 파5는 5번 쳐서 넣으면 된다는 뜻이다.
남자골프의 경우 파3홀은 거리가 229m이하, 파4홀은 230~430m, 파5홀은 430m 이상이어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자는 파3이 192m이하, 파4가 193~366m, 파5가 367~526m로 권장하고 있다.
골프장의 정규코스는 18개의 홀로 구성되며 홀은 보통 파3홀 4개 파4홀 10개, 파5홀 4개로 구성돼 파72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파3x4=12타 + 파4x10=40타 + 파5x4=20타)=72타가 기본이며 여기에서 기준타수보다 1타 적은 타수로 볼을 홀컵에 넣는 것을 '버디'라고 하며 기준타수보다 1타 더 치는 것을 '보기'라 한다.
2타 적게 치는 것을 '이글', 2타 많게 치는 것을 '더블보기', '홀인원'은 단 한번에 쳐서 홀컵에 볼을 넣는 것을 말한다.
홀인원은 파3홀에서 99%가 이뤄지며 아마추어의 경우 홀인원은 평생 한번 올 수 있을까 말까하는 행운이다.
골프란 가장 적게 쳐서 홀인 시키는게 골프의 핵심이며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것이다.

♣. 참고

골프 규칙은 영국골프협회, R & A (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Andrews)와 미국골프협회, USGA (United States Golf Association)가 공동으로 세계각국의 의견을 모아, 4년마다 개정하고 세계공통으로 적용하게 되며, 이를 기초로 하여 대한골프협회(Korea Golf Association)에서도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
골프 규칙을 모두 외운다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매우 힘든 일이지만, 플레이어는 규칙을 알고서 플레이하여야 함으로 캐디 백에 룰 북을 넣어두고 참조한다.
골프 룰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① 볼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플레이한다.
  2. ② 코스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플레이한다.
  3. ③ 볼은 클럽으로 똑바로 친다.
  4. ④ 해저드(장해 지역)에서는 클럽을 지면에 대거나 돌멩이를 옮겨서는 안 된다.
골프의 기원 및 변천과정

골프의 기원에는 네덜란드에서 아이스하키 비슷한 놀이인 '콜벤(Kolven)'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그것이 골프로 변화되었다고 하는 설과, 스코틀랜드의 양치는 목동들의 돌맹이 놀이가 점차 영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사적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여러 문헌을 통해 볼때 15세기 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 전국적으로 보급․확산되었다. 당시에 얼마나 골프가 유행했던지 국민의 무도(武道)와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급기야 1457년에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에 의해 골프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1608년 영국 런던의 블랙히스 클럽에 골프회가 조직되었고, 1744년 스코틀랜드의 동해안에 있는 도시 리스에서 '리스 젠틀맨 골프회(The Gentle-men Golfers of Leith)'가 골프규칙 13조항을 제정한 것이 최초의 문서화된 골프규칙이다.
1754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즈 클럽(The Society of St. Andrews)이 이 13조항 골프규칙을 약간 수정하여 받아들여 계속 발전시켰으며 1897년 세이트 앤드루즈의 로얄 엔드 에인션트 클럽(Royal & Ancient)이 규칙위원회를 구성하여 골프규칙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로서 골프는 본격적인 스포츠 경기로서의 면목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토너먼트는 '영국오픈(The British Open)'이다. 제1회 대회가 개최된 것은 1860년. 제1회 영국오픈이 스코틀랜드 남부 도시 그라스고의 남쪽 해변가 프레스트위크 골프코스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세인트앤드루즈, 플스트윅, 머셀버러, 노스버윅과 같은 골프클럽들이 클럽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골프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1894년 미국골프협회(USGA)가 창립되었고, 1895년 제1회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같은 해에 전미오픈(US OPEN) 선수권 대회도 시작되었다. 1901년엔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의 골퍼들에 의해 최초의 프로골프협회인 US PGA(United States 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가 결성되었다.
이후 미국의 골프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골프인구와 골프장 수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된다. 1958년에는 세계골프연맹(WAGC)이 뉴욕에 설립되었다.

국내 골프의 역사
  1. 1) 초창기

    국내 골프의 도입

    우리 나라에 처음 골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80년대 영국인에 의해서 였다. 1880년, 원산항이 개항되자, 영국인들이 중국의 세관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1880년부터 1905년 사이의 기간동안에 최초의 원산 골프 코스가 영국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던 영국인들의 생활 풍습상 거주하던 곳마다 반드시 골프 코스를 두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위의 역사는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과 일본의 골프역사의 시발점을 만들었던 영국인이 당시 한국의 관세징수사무를 맡게 된 과정을 확인하고 싶다면 일본관세협회 발행의「세관백년사」를 방증자료로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80년 원산 항이 개항되었고 관세징수사무를 청국에 위촉하였으나 당시 청국의 세관업무는 영국인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조선골프소사(朝鮮골프小史)에 의하면 「구한국 정부시대에 외국인들이 개항도시인 원산의 세관 구내에 6홀의 골프코스를 건설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곳 세관 특구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마을 노인들로부터 구전되었을 뿐이며, 또한 원산근교의 외인촌과 황해도 구미포에서 위와 비슷한 골프코스가 존재했지만 한국인의 출입뿐만 아니라 일본인까지도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그 후 원산이 시세의 확장에 따라 시가지 광장건설을 하게되어 주택을 철거하던 중, 영국인이 살던 집 다락에서 낡은 골프채가 발견되어 구전되어오던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1897년 세관구내 해변가에 조성된 골프코스는 일본보다 6년이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골프의 창시기

    1917년에 조선철도국(朝鮮鐵道局)은 만주철도주식회사로 이관되었다.
    조선철도국의 安藤又三郞 이사는 대련 만철 본사(大連滿鐵本社)에 출장 중, 성포 골프코스의 광대하고 쾌적한 플레이 현장을 보고, 경성에도 골프코스를 건설할 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다각도로 연구․검토한 결과, 철도국 직영의 조선호텔 숙박 객에 대한 서비스 및 외래 객 흡수책의 일환으로 호텔부속 골프 코스를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철도국 관리 하에 건설계획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하여 효창원 골프코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회원들은 골프 규칙이나 에티켓을 알지 못했다.
    1922년 6월에 정무총감 有吉忠一가 부임한 이후 플레이 방식이 개선되었으며, 그는 골프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국식 골프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관민을 통하여 많은 골프 애호가를 배출하게 되었다. 효창원 골프 코스가 공원으로 유입됨에 따라, 골프 코스는 청량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철도국과 호텔로부터 골프 코스는 완전히 독립하여 건설되었으며, 1924년4월20일 설계나 자금투자를 달리한 사단법인 경성골프 구락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대구(1923), 평양(1928), 군자리(1929), 원산(1929), 부산(1932) 골프코스 등이 차례로 개장을 하게 되었다.
    1937년 9월 23일, 경성 골프구락부에서는 조선골프연맹창립총회가 개최되어 규약과 임원이 결정되었다. 이사장, 상무이사, 이사가 1명씩 선임되었으며, 대구, 평양, 부산, 원산골프코스에서 이사 각 1명씩을 선임하고, 정식으로 조선골프연맹이 발족하였다. 골프연맹의 창설활동은 활발하였으며 골프의 밝은 전망을 볼 수 있었다. 최초의 한국인 골퍼는 1924년 청량리 골프코스에서 등장하였으며, 1929년에 개장한 군자리 골프코스에서 본격적으로 우리 나라 골퍼들이 경기를 개최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군자리 골프코스에서 최초로 캐디가 등장했다고 한다.

    조국의 광복과 한국 골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골프 코스는 농경지로 변모하였으며, 광복 후 4년 만에 골프코스를 복구하게 된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군자리 골프코스가 복구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장 시공은 연덕춘 프로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농경지를 경작하던 소작농들의 잦은 시위로 코스 복구 작업은 난항을 거듭하였다. 소작농들의 요구를 일부 수렴하고 지원을 하기로 하여, 복구 공사는 1949년 5월 완전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복구 1년 만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코스는 또다시 황폐화되었다. 6.25동란이 지나고, 1954년 7월,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군자리 골프코스는 전장 6,750 야드, 파72의 국제 규격으로 재복구 되었다. 그리고, 1953년 11월11일, 한국 골프사상 최초로 우리 손으로 이룩한 군자리 골프코스를 운영해 나갈 사단법인 서울 컨트리 구락부를 창설하였다. 이를 발단으로 1955년에는 부산 컨트리 구락부가 발족되었다. 1954년, 대통령 배 한국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1958년 6월12일, 군자리 골프 코스에서는 제1회 한국 프로 골프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렇게 군자리 골프 코스는 한국골프의 활성화를 도모하였으며, 해외교류의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2) 전환기

    서울 컨트리클럽 군자리 코스는 한국골프의 총본산 역할을 해야 했으며, 서울 컨트리 구락부에 의해 운영되었던 골프계는 제4회 월드컵 골프 경기 참가를 계기로 하여 한국 내 골프 대표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1965년 9월 14일에 개최되었던 한국골프 협회 창립 준비 위원회 회의록에는, "한국골프협회는 1959년에 창설되었으나 4.19의거당시 각 정당, 사회 단체의 해산지시에 따라 유명무실상태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수록되어 있다. 1959년, 골프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한국 골프 협회가 발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골프의 대표기관으로서의 그 기능을 발휘하기에는 재정, 운영면에서 여건이 미흡하였다. 1960년, 한국골프협회는 4.19 학생 의거로 각 정당, 사회단체의 해산 지시에 따라 창립 1년만에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한동안 소강 상태였던 골프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게 되는데, 1965년 9월14일, 한국 골프 협회의 재창립을 조속히 추진하려는 동호인들이 모여, 협회 창립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창립 활동을 하게 된다. 1965년 9월14일 개최된 협회 창립 준비 위원회의 결의에 의하여 협회 대의원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1965년 9월23일 가진 한국 골프 협회 창립 총회에서 총대의원 13명중 12명의 출석으로 개회를 선언하였다. 1953년 11월11일 발족했던 서울 컨트리클럽은, 한국의 골프를 본궤도에 올려놓으려는 10여년 간의 끈질긴 추진으로, 많은 역경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65년 9월23일, 조국광복 후 최초로 한국 골프 협회가 출범하였다. 사단법인 한국 골프협회 설립 허가 신청서를 관계당국에 제출, 동년 5월 3일부로 허가를 받음으로써 합법적인 대표기관으로 행사하게 되었다.
    1965년에 창립한 한국 골프 협회의 시급한 과제는 한국 골프의 위상을 세계 골프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65년 12월17일, 협회는 국제 골프 연맹과 아시아 골프 연맹에 한국 골프 협회의 창립을 통고함으로써 국제 골프계와의 경기와 교류를 추진하였다. 이때부터 각종 국제 경기에도 우리 나라 선수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1959년에서 1976년 사이에 국내 골프의 전망을 밝게 본 기업들이 골프장을 활발히 건설하게 되었다. 최초의 한양 컨트리 클럽(1964)을 필두로, 태능 컨트리 클럽(1966), 안양 컨트리 클럽(1968;현 안양 베네스트 골프클럽), 용인 컨트리 클럽(1970; 현 양지 컨트리 클럽), 수원 컨트리 클럽(1975) 등 20여 개의 골프장이 이 기간 내에 건설되었으며, 이 시기가 우리나라 골프사의 육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후 골프 코스 건설이 수도권 주변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 나라 골프 발전의 많은 기념비적인 일들을 해온 군자리 코스는 1970년 12월4일, 정부 방침에 따라 급작스럽게 어린이 대공원으로 개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울시 측은 시가지가 앞으로 확장하게 될 전망이므로, 군자리 코스의 위치는 골프 코스로서는 적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1972년 10월 31일, 40여 년간의 우여곡절을 이겨내었던 군자리 골프코스는 골프 동호인들이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단법인 한국 프로 골프 협회에서는 1968년 5월 17일, 연덕춘, 박명출, 배용산, 한장상, 이일안, 조태운 프로 골퍼들이 모여,'한국 프로 골프 협회 창립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각종 경기를 치르면서, 프로 골퍼의 부단한 기술 향상과 국제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하였다.
    1968년 5월 22일, 한국 프로 골프협회 제1차 이사회를 허정구 이사의 사회로 개최함으로써 한국프로골프협회 출범 제1호 임원단의 구성을 보았다. 명문 골프장의 합리적인 운영과 골프장을 통한 관광사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전국 골프장의 이사장이 발기인이 되어 한국 골프장 사업 협회가 1974년 1월 1일 창립하게 된다. 또한, 한국 시니어 골프 선수권 대회 등의 각종 국내 골프 경기가 1970년 대에 시작되었다. 협회의 창립과 골프 코스 건설 등, 골프발전을 위한 골프계 인사들의 활발한 활동은, 우리 나라 골프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3. 3) 발전기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에는 더 많은 골프코스 건설이 추진되었다. 1979년에 제주도 오라 골프장이 개장되었으며, 경주에서는 조선 컨트리 클럽의 건설이 추진되었다. 80년에는 경기도 정아 골프 코스, 82년에 창원 골프장, 83년에 광주 골프장 등이 연이어 건설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대중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경기 사업을 살펴보면, 1984년에는 각종 경기 사업이 22종목으로 늘어났다. 골프 경기와 협회의 경기 사업은 본 괘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뉴델리에서 개최한 제9회 아시안 게임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됨으로써 우리 나라 경기 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하였으며, 쥬니어 신인 골퍼의 수와 기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1984년 제2회 쥬니어 학생골프 선수권대회에는 대학생을 포함하여 100명 가까운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여성 골퍼들의 증가로 한국 아마추어 부녀 골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제3회 대회에는 30여명, 5회(1980)에는 50여명, 8회(1984)에는 84명의 여성 골퍼들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경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오란씨 오픈 선수권 대회, 쾌남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연합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부산, 삼양, 수원, 동해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등 한국 골프의 대성장기를 이루었다. 특히, 매경 오픈 선수권 대회는 매일경제신문사가 우리 나라의 골프를 건전한 국민 스포츠로 육성하기 위해 1982년에 창설했다. 또한, 1982년도 제29회 월드컵 국제 골프 선수권 대회(멕시코)에서 최상호선수가 개인전에서 5위를 차지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였다. 국제 골프 연맹은 대회의 세계화를 위하여 각국에 골프 외교를 벌였다.
    1980년대는 여자 선수들의 대회 참가로 여성 골퍼의 지위 향상과 함께 골프계의 발전이 거듭되었다. 한국 골프 협회는 미래의 한국골프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들을 육성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주니어 골프 교실이다. 한국골프협회는 학생 및 쥬니어 골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미국 골프 협회, 영국 R&A, 그밖에 30여개 국 골프 단체와 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가면서 한국골프 경기 일정 안내와 골프장 시설소개, 그리고, 현행 문화체육부에서 발행한 한국소개 화보를 발송하기도 하였다. 1984년, 골프장 28개소, 연간 내장 객수 130여만 명이던 것이, 97년에는 운영 중인 골프장이 112 개소, 연간 내장 객이 800여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골프 인구는 계속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며, 국민체육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프로 골프 분야에서는 박남신, 이강선, 김종덕, 구옥희와 같은 많은 우수한 선수들이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한국 골프의 국제적 위상 또한 높아져서 국제적 경기에서 우승을 하는 등 (강욱순 프로, 1997년 APGA, 오메가 투어 우승)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박세리 선수는 최근 들어 삼성그룹의 후원과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여 미국 4대 메이저 대회 중 2개(98년 멕도널드 미국여자 프로골프 챔피언쉽 우승, 98년 US여자오픈 우승)를 석권하는 놀라운 위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이로서 우리나라의 골프 위상은 세계무대로 발돋움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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